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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강영철 작성일2016.05.16 조회수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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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잃은 양들을 위하여!

<직장인 5분 묵상, 방선기 원용일 직장사역연구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15:7)


하나님은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 무척 기뻐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기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잃은 양 비유에서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는 많은 성도들이 모여서 찬양하는 것보다 하나님 아버지를 더 기쁘시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한 영혼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합니다. 사실 우리가 일하는 직장에는 잃은 양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두룩합니다. 지난 주간에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큰소리로 야단쳤던 상사도 잃은 양일 수 있습니다. 이번 주간에 만나 어려운 상담을 해야 할 거래처 고객도 역시 잃은 양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과 만나는 것보다 주일에 교회에서 믿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더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직장에서도 믿는 사람들과 만나야 마음도 맞고 편안하게 느끼지 않습니까? 물론 믿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끼리 모이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눈은 항상 우리의 직장에 있는 잃은 양들을 향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은 하나님이 보시는 것과 같은 안목으로 직장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양들을 보고 있습니까?

일터의 기도 †
제가 일하는 일터의 잃은 양들을 제 가슴에 품게 하옵소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전도하는 열정을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께 큰 기쁨을 드릴 수 있게 하옵소서.

천국에는 가족 관계가 없다니…

<직장인 5분 묵상, 방선기 원용일 직장사역연구소>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눅20:33-36)


예수님 시대에 유대교의 종파 중 사두개인들은 대제사장을 지지한 당파로 일종의 어용 종교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리적으로는 성문화된 모세 율법만을 인정하고 부활도, 천사도, 영도 부인하고 천국상급도 부인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도 거의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유대인의 계대(繼代) 결혼 전통을 근거로 교묘한 질문을 했습니다. 일곱 형제가 차례로 죽으면서 한 여인을 아내로 취하고 다 죽었는데 나중에 그 여인이 “부활 때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두개인들의 이 의도적 질문을 계기로 분명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결혼도 하고 가족이 있지만 천국에서는 천사와 같아서 결혼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34-36절). 그것을 사두개인들이 중시하는 모세 율법을 근거로 말씀하셨습니다. 가시나무가 불타는 앞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셨다고 하십니다(37절). 예수님은 하나님이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 즉 죽은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산 것이라고 하면서 영적 세계와 부활의 진실성을 입증하셨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천국에서는 더 이상 가족 관계가 아닌 새로운 차원의 영적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가족 관계이니 소홀히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죽은 저 천국에서는 가족의 혈연이 없어지는 것이라면 더욱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가족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가족 관계보다 더 친밀할 것이 분명한 천국의 관계를 기대하면서 오늘 우리의 가족들을 향한 사랑과 관심을 더욱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일터의 기도 †
이 세상에서 더욱 가족을 사랑할 수 있게 하옵소서. 가족들을 향한 관심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옵소서.

세속의 안정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라!

<직장인 5분 묵상, 방선기 원용일 직장사역연구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요즈음 결혼 연령이 점점 늦어집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출산이 늦어지거나 줄어들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레이 프리처드 목사는 그의 책 『믿음의 여정』에서 믿음 있는 사람은 일찍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물론 그가 이혼율이 높은 십대 결혼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을 늦게 하는 사람들 속에 숨어있는 세속적이며 불신앙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이 된 후에 결혼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향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크리스천의 입장에서 따지고 보면 우리의 삶의 기초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두기보다 세속적인 안정에 두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 미래의 안정이 보장이 되어서 떠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셨으니까 그 말씀을 믿고 떠난 것입니다.


우리의 결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결혼을 하라니까 믿음으로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안정된 다음에 결혼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가 이룬 세상의 안정을 더 믿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아무런 대책도 갖지 않고 무책임하게 결혼을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질 때를 기다려서 하겠다는 것은 결혼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다 이루겠다는 불신앙적 태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결혼에 있어서 과연 어떤 마음이 더 우선하는지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일터의 기도 †
결혼 (뿐만 아니라 모든 인생사)에 있어서 세상적 안정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믿음 있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직장인 5분 묵상, 방선기 원용일 직장사역연구소>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1:16-17)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들자 모압 땅으로 내려간 엘리멜렉의 가족은 10년이 지나자 남자들이 모두 죽는 안타까운 상황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안에는 나오미와 아들들과 결혼시킨 모압인 며느리 두 사람만 남았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가다가 국경선에 이르러 며느리들에게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전통인 계대결혼에 대해 말하면서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젊은 며느리들을 고향으로 데리고 가야 자신이 부양받을 수 있겠으나 나오미가 만약 그 때 결혼해서 아들을 낳는다고 해도 그 아이들이 다 자라기까지는 너무나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니 돌아가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라고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배려했던 것입니다. 이 관대한 시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큰 며느리인 오르바는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어머니의 하나님을 섬기고 어머니와 함께 지내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런 신앙적인 확신으로 시어머니와 함께 남편의 나라인 유다로 간 룻은 결국 다윗 왕가의 조상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선조가 되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뿐 아니라 영원을 좌우하게 된 것입니다. 시어머니를 향한 효도를 결심한 룻의 태도가 결국 신앙의 결정이었고 그것으로 놀라운 복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고 교훈하는 것을 룻이 이미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일터의 기도 †
어버이날에 더욱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부모님 섬기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먼저 사과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많습니다!

<직장인 5분 묵상, 방선기 원용일 직장사역연구소>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5:23-24)


직장생활이나 인간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 간에 꼬인 문제가 풀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처음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간단히 사과했으면 그런 복잡한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경우도 꽤 있습니다. 미리 그렇게 조치를 제때에 하기만 했다면 얼마든지 쉽게 해결될 수 있어서 더욱 안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금방 사과하면 문제없이 해결될 수 있을 일인데도 사과하지 못하는 것은 자존심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사과하려고 하지 않고 또 알고 있어도 미루곤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도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사과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과하려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비록 힘들지라도 한 번 꾹 참고 사과하면 잃은 자존심보다 훨씬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무능력하다고 볼 것을 염려합니다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오히려 용기 있는 사람으로 보아줍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그렇게 사과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용기 있게 사과하여 큰 기쁨을 얻는 사람이 되어보시지 않겠습니까?

일터의 기도 †
저도 관계 문제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사과하면 될 것을, 아직 사과하지 못한 사람에게 제가 먼저 사과할 수 있는 용기와 아량을 주시옵소서.

자녀들에 대한 청지기 의식

<직장인 5분 묵상, 방선기 원용일 직장사역연구소>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마20:20-22)


자식 잘 되는 일이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부모의 심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도 유명한 ‘치맛바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아들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보다는 예수님 덕분에 영광을 누릴 것을 바랐습니다. 그것도 다른 제자들보다 훨씬 나은 자리에 오르기를 바랐습니다. 이 여인의 생각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바로 그 심정이 대다수 부모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원하시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자녀보다 먼저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가 받을 영광보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녀가 받을 고난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교육 문제가 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학원이나 과외 때문에 가정에서 자녀로서의 책임이 면제되고 학교공부나 시험이 있다면 교회생활도 얼마든지 무시되기도 합니다. 대학입시를 위해서 교회출석을 아예 중단하는 예도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아이들의 사교육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자녀교육은 이제 우상숭배의 수준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자녀의 성적이 올라가거나 명문 학교에 들어가면 부모들이 왜 기뻐하는 것 같습니까? 자녀들의 성적이나 좋은 학교에 관심을 갖는 것은 따지고 보면 부모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자녀의 장래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현재 부모의 욕심이나 허영을 만족시키기 위한 요소가 됩니다. 하지만 자녀들은 부모의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양육하도록 맡기신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청지기 의식으로 부모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성적이나 학교만이 아니라 자녀들의 인생을 길게 보고 세상 속의 한 크리스천으로 자녀들을 세워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일터의 기도 †
자식이 저의 소유인 것으로 착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의 소유인 자녀들을 주님의 뜻에 따라 양육하게 하옵소서.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 목적인 결혼

<직장인 5분 묵상, 방선기 원용일 직장사역연구소>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신6:24)


“행복 예식장”이란 곳이 있습니다.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될 것을 기대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담은 이름입니다. 결혼을 통해서 행복을 얻기 위한 각종 책이나 가정 관련 세미나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시대 사람들의 결혼생활에 행복이 늘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부부 세미나에서 강사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게리 토마스의 『사랑과 행복, 그 이상의 결혼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결혼의 참된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닌 가정의 거룩함이라고 가르칩니다. 거룩하게 살려면 수도사들처럼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할 것 같지만 사실 결혼을 한 사람이 더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수도사들이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지만 새벽에 아기 우는 소리에 깨서 돌봐주는 것이 더 힘들 수 있습니다. 수도사들이 혼자 사는 것이 고통스러울 것 같지만 부부가 갈등을 겪으면서 사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결혼의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이 더 거룩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끔 다 떨쳐 버리고 혼자 사는 것이 더 행복하겠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결혼생활을 합니까? 결혼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성장하고 거룩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생활에서는 갈등이 없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갈등을 많이 갖게 되는 사람이 부부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갈등을 잘 극복해서 참고 견디면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부부가 진정한 모습을 형성하는데 9년에서 14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결혼 생활 3-4년 만에 헤어지는 부부는 결혼이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하고 헤어진 셈입니다. 따라서 때로는 힘이 들지만 결혼생활을 통해서 서로에 대해 참는 훈련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거룩해집니다. 행복은 거룩하게 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너스입니다.

일터의 기도 †
거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갈등이 있고 고통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견딜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시옵소서.

우리의 잘못된 종교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직장인 5분 묵상, 방선기 원용일 직장사역연구소>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말1:8-9)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귀환했던 백성들 사이에서 사역한 말라기 선지자는 말씀을 떠난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말라기 선지자가 백성들을 지적하는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짓는 죄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백성들을 향해 여러 차례 질문을 쏟아놓고 있습니다.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6절), “더러운 떡을 드리고도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느냐?”(7절), “저는 것, 병든 것 드리는데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8절)


말라기 선지자의 이 연속적인 질문들 속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백성들뿐만 아니라 제사장들도 나서서 결국은 하나님을 멸시한 행동에 대해(6절) 하나님이 너무나 안타까워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백성들과 제사장들은 뻔뻔하게도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일은 골라서 다하듯 하면서도 “우리가 언제 그런 일을 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식으로 발뺌을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성적 종교성을 질타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감화 없이 오랜 시간이 지났거나 어떤 다른 이유 때문에라도 신앙의 본질을 놓칠 경우 타성적인 종교성에 빠져 습관처럼 종교적 행위들을 하곤 하다가 결국 하나님 앞에 큰 불의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타성에 빠질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하면서도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하나님 앞에 가증스러운 죄악이 됩니다. 우리를 돌아봅시다.

일터의 기도 †
참된 영성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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